프로그램 노트
자외선을 피해 낮에 돌아다니는 방법에서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고도 살아가는 방법까지 완벽하게 터득한, 뱀파이어 구력 500년의 란. 특수분장사로 완벽한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그이지만 조물주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는 건물주의 위세 앞에선 한없이 작아질 뿐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란의 방부제 미모에도 추후의 의심 없이 일용할 양식인 선지를 내어주고 가끔 칵테일 한잔 권하는, 어쩌면 친구 비슷한 정육점 주인이 있는 동네. 정 붙이고 살만한 이 곳 망원동에 개발의 바람이 불어오면서 500년을 살아도 가난한 뱀파이어 분장사 란은 건물주로부터 분장실과 ‘어쩌면 친구’의 오래된 가게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어느 날, 골목길에서 마주친 소년에게서 과거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준 진이의 향기를 맡은 란의 심장과 본능은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광풍 앞에 곤경에 처한 뱀파이어라니, 상상 만으로도 호기심을 자아내는 재기발랄한 설정과 흡혈의 위험한 본능을 영원한 사랑의 떨림에 빗댄 이야기꾼의 면모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온라인 플랫폼에 소개돼 화제를 모았던 웹드라마의 극장버전이다. 500살 고령답게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듯 어딘가 허술한 란을 찰떡처럼 연기한 정연주와 신선한 매력으로 그를 사로잡는 소년 역의 송강, 전무후무한 연상연하 커플의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 속에 결국은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뭉클한 감동까지 전해주는 작품. (모은영)